아마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단군신화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리스로마신화 못지 않게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게 내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는 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로 오며 신화의 전통이 맥이 끊겼다고 보고 있다. 국가가 새로 새워지면서 이전 왕조에 대하여 부정할 필요가 있었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이 새로 만들어 질 때마다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신화를 재 정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옛 신화가 민족학과 결합하여 제국주의 시대에 앞서 16세기 즈음 민족의 통일성과 서양인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하여 더 문화,예술적으로 더 활발해졌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사료가 소실 되었고, 일제침략 이후에야 손진태를 중심으로 민족학의 연구가 다시 활발해 졌다고 보고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신가유편에 실린 창세가와 구비문학으로 전승된 마고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조상들이 창세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거인 마고이야기


아주 먼 옛날, 해도 달도 없이 어둡기만 한 세상에 마고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잠만 잤는데, 그녀가 코 고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하늘이 땅에 내려앉고 땅은 하늘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갈라졌다. 하늘이 떨어지는 바람에 별들도 질서를 잃고 우르르 떨어져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마고는 세상이 엉망이 된 줄도 모르고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는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다. 마고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니 땅에 떨어진 하늘이 밀어올려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해와 달이 제자리로 찾아갔고, 다른 별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별들 사이에 뒤엉켜 있던 구름과 비가 어디 있을 데가 없어지니까 땅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홍수가 나서 사람들은 갑자기 솟아오른 산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까마득히 높았던 산은 사람들의 무게에 눌려 쉬익 소리를 내며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땅으로 다시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와서 보니 높이 솟았던 산의 정체가 바로 마고의 무릎이었다. 제주도에선 산을 오름이라고 하는데 마고가 무릎을 올려 세워 생기게 되었다는 뜻이 있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마고의 발끝을 보러 달려갔다. 하지만 마고의 정강이에도 못갔다.

마고가 드디어 오줌을 누니 오줌이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오줌을 눈 후에 마고는 아직도 잠이 덜 깨서 또 잠들고 말았다. 한라산을 머리에 베고 오른발은 동해로 뻗고 왼발은 서해로 뻗어 걸쳤다. 잠에서 깬 마고는 심심해서 두 발로 물장구를 쳤다. 출렁이던 물은 땅을 덮쳤고, 사람들은 물을 피해 산으로 올라갔다. 마고는 다리 아래에 놓여있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땅을 긁으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곳은 산맥이 되었고 푹 패인 곳은 강이 되었다. 이리하여 마고의 국토가 만들어졌다. 이 국토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다.

한참 일을 한 마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고가 내쉰 한숨은 태풍이 되어 나무와 바위를 날려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막한 만주 벌판이 생겼다. 마고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을 몰랐다. 그때는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고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녀가 커다란 산을 뽑아 먹으니 이가 아프고 맛이 없어서 도로 뱉어버렸다. 그녀가 버린 큰산은 북쪽에 박혀 백두산이 되었고 작은산은 남쪽에 떨어져 한라산이 되었다. 이렇게 한반도가 오늘과 같은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 뒤로 마고의 얼굴은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토리 플롯은

①거인 마고가 살았다.

그녀의 코고는 소리에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갈라져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마고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자 하늘이 다시 올라갔다.

마고가 오줌으로 강과 바다가 만들어졌다. 

마고가 땅을 긁어 산맥과 강이 만들어졌다. 

마고가 먹다 버린 것이 백두산과 한라산이 만들어졌다.


거인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하늘이 무너졌다는 발상이 참 독특하다 생각이 되고 다시 기지개를 펴서 하늘을 올렸다는 말이 참 재미있다. 세상이 창조된 이유를 무의식적인 거인의 행동에서 찾았다는 것도 흥미가 간다. 세상의 창조 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형의 탄생이라는 구체적 사실을 밝히기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



손진태, 조선신가유편


손진태가 1923년에 채록하여 1930년에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이라는 책에 그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은 상태였다가 하늘이 가마솥 뚜껑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지자 그 틈새에 미륵이 땅의 네 귀에 구리 기둥을 세워 천지가 분리되었다. 이 시절에는 해와 달이 둘씩 있었는데, 미륵이 해와 달을 하나씩 떼어 북두칠성과 남두칠성 그리고 큰 별, 작은 별들을 마련했다. 미륵은 칡넝쿨을 걷어 베를 짜서 칡 장삼을 해 입었다. 그런 연후에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내기 위하여 쥐의 말을 듣고 금덩산으로 들어가서 차돌과 시우쇠를 톡톡 쳐서 불을 만들어 내고, 소하산에 들어가서 샘을 찾아 물의 근본을 알아내었다. 미륵이 금쟁반은쟁반을 양손에 들고 하늘에 축수하여 하늘로부터 금벌레은벌레를 다섯 마리씩 받아, 각각 남자와 여자로 변하여 다섯 쌍의 부부가 생겨나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다. 미륵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때에 석가가 등장하여 미륵에게 인간 세상을 내놓으라 했다. 미륵은 석가의 도전을 받고 인세 차지 경쟁을 하게 되었다. 미륵이 계속 승리하자 석가는 잠을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는 내기를 제안하고, 미륵이 잠든 사이에 미륵이 피운 꽃을 가져다 자기 무릎에 꽂아 부당하게 승리한다. 미륵은 석가에게 인간 세상을 내어주고 사라진다. 석가의 부당한 승리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에는 부정한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스토리 플롯은

①하늘과 땅은 붙어있었다.

②하늘과 땅에 틈이 생겼는데 미륵이 그 틈에 구리 기둥을 세웠다.

③이 때에 해와 달은 두 개 였는데, 하나씩 떼어 별을 만들었다.

④쥐의 말을 듣고 돌과 쇠로 불을 만들고, 샘을 찾아 물의 근본을 알아내었다 

⑤하늘로부터 다섯마리의 금벌레, 은벌레를 받고 다섯쌍의 부부를 만들고 인류를 다스렸다.

⑥석가가 세상을 갖기를 원하였고, 부정한 방법으로 미륵에게 승리하였다

⑦석가가 세상을 통치하자 부정한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읽는 순간 유학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이야기. 유학자들은 군자와 성리학의 이상세계만 생각했던 인물들로만 생각했고 단 한번도 그들이 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고민했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이유에서 참 흥미가 갔다. 아마 창세의 시점엔 하늘과 땅이 붙어있던 세계, 즉 무의 세계라 인식했고 미륵이라는 절대자가 만물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벌레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발상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석가를 양아치로 보며 미륵이 잘 만든 세계에 석가가 부당한 것을 퍼트렸다고 보는 것도 재미있고.   



날짜

2017. 7. 1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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